8개월까지 크게 아픈 적 없이 건강하게 자라서 고맙다 했더니 결국은 한 번 앓았다.


금요일 낮에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상윤이가 열이 좀 있다고 했다. 체온계로 재보니 38도가 조금 넘는다고.. 아직 별로 안높으니 좀 있어보자고 하고 끊고 위장형 감모에 사용하는 도씨평위산을 만들어 퇴근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보니 애가 좀 아픈 티가 나고 체온도 38.5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씨평위산이 너무 써서 상윤이가 입도 못댄다. 이런... 내가 먹어봐도 정말 못먹겠다.

전에 이 약 지어갔던 애기들 엄마들은 이 약 어떻게 먹였을까. 먹일 수만 있으면 열을 떨어지겠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땀은 전혀 안나면서 머리와 손발이 뜨겁고 귀는 차갑다. 체한 증상과 감기증상이 섞여서 판단이 어렵다. 우선 체한 게 원인일 것으로 판단.. 하루 있어보자고 하고 손발에 침을 간단히 놓고 그날 밤은 그냥 보냈다. 체온이 39.1도 전후에서 머물고 상윤이가 중간에 자주 깨서 보채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넘어갔다. 덕분에 아내가 잠을 거의 못잤다. 아침이 되니 약간 체온이 떨어졌다.


토요일. 퇴근해서 체온 보니 거의 39도에 육박하고 있다. 고민... 식체는 아닌 것 같다. 감기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해열제 쓰면 열이야 바로 해결이 되겠지만 이것도 직업병인지.. 해열제의 부작용에 대한 생각과 한의사의 자존심과 아이에 대한 아빠로서의 불안감이 복잡하게 마음속에서 싸운다. 결국 다시 한의원으로 가서 약을 만들어왔다. 땀을 좀 내줘야 열이 떨어지겠는데.. 그런데 열이 너무 높아서 발한제로 해결이 될까 고민.. 결국 표증에 쓰는 향소산과 리증에 쓰는 백호탕을 한첩씩 만들어서 왔다. 만약에 대비해 손발을 따줄 란셋도 넣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길에 약국에서 좌약으로 된 해열제도 한 통 구입했다. 만약 한약으로 안되서 열이 40도 가까이 되면 해열제라도 써야지...


집에 와서 상윤이 상태를 보고 향소산과 백호탕중에 고민하다 향소산으로 결정.. 주전자에 1시간정도 끓여서 식혔다. 다행시 맛이 쓰지 않고 약간 달아서 상윤이가 거부감 없이 받아 먹는다. 이제 땀만 내주면 되는데... 그런데 땀이 금방 안난다.. 저녁 먹고 자기 전에 한 번 더 먹였다.


그날 밤에 아내는 전날의 과로로 인하여 거의 혼수상태로 잠들었다. 금요일 저녁에 거의 잠 못자고 토요일 낮에도 상윤이가 지 몸이 아프니까 계속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고 부대껴서 거의 하루종일 상윤이를 안고 다녔을 것이다. 평소에는 안기는 것도 싫어하고 혼자 기어다니고 뭐 붙잡고 서는 것만 좋아하더니 아프니까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안기는 게 더 좋은가보다.


결국 상윤이는 밤새 아빠가 보게 됐다.. 우선 30분 간격으로 열과 맥박수를 체크했다. 39.5도까지 올라간다. 아직도 땀은 안난다.. 할 수 없다. 억지로라도 땀을 내야지.. 상윤이를 가슴에 안고 이불로 상윤이를 감아 안았다. 한여름에 난로가 따로 없다. 39.5도짜리 애기를 이불로 싸고 안으니 내가 다 땀이 줄줄 흐른다. 다행히 상윤이도 머리와 목덜미에 땀이 난다. 20분정도 땀을 내주고 다시 눕혔다. 체온측정.. 39도 가까이까지 떨어졌다. 다소 안심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시간쯤 지나자 났던 땀이 개면서 다시 체온이 39.6도까지 올라간다. 다시 상윤이를 안고 땀내기 시도.. 땀내기는 총 세번을 해주게 됐다. 결국 체온은 39도 정도에서 안정이 됐다. 새벽녁이 되자 38도 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상윤이도 좀 안정이 되니 잠이 들었다. 아빠도 잠시 눈을 붙였다.


일요일.

아침에 체온측정 38.7도. 오전에 37.8도 낮에 37.5도.. 계속 체온이 떠어져 오후에는 거의 정상체온이 되었다. 상윤이도 좀 활발해지고..

정말 힘든 2박 3일이 넘어갔다. 덕분에 아빠는 일요일에 완전히 퍼져버렸고.. 다행히 엄마는 조금 회복이 되서 상윤이를 봐줄 수 있게 되었다.


ps 1 >감기를 이기고 나서..

다행히 상윤이가 기초체력이 튼튼해서 잘 견뎌주었다. 아이에 따라 열이 38.5도만 되어도 경기하는 아이가 있는데 상윤이는 39.6도까지도 견뎌주었으니 얼마나 장한지.. 처음이지만 밤새면서 상윤이를 잘 간호한 아내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좀 대견하기도 하다. 그리고 해열제를 안쓰고 상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감기를 이기게 할 수 있었던 점도 참 다행으로 생각된다. 비록 이번에 고생했지만 이번 고생을 통해서 앞으로는 어지간한 것은 상윤이의 몸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일테니 말이다.


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상윤이가 아프면서 돌아다닐 힘도 없어서 그 활발하던 놈이 가만히 엎드려서 눈만 말똥말똥 뜨고 바닥에 얼굴 옆으로 대고 있는 걸 보면서 안쓰러워서..


ps 2> 부작용.

감기는 스스로 잘 이겨서 좋았는데 부작용이 있다.

상윤이가 아빠한테 삐졌다.

지 아파 죽겠는데 붙잡고 아프게 침놓구.. 손따구.. 쓴 약먹이구.. 땀낸다구 답답하게 끌어안고 못움직이게 하고.. 하여간 점수 잃을 짓을 많이 했다.

한동안 상윤이가 아빠 눈을 안쳐다보려고 하고.. 아빠한테 잘 안오려고 해서 고생했다.

그거 만회하려고 상윤이 앞에서 얼마나 재롱을 떨었는지.. -_-;

다행히 이제는 다 회복되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놀고 있다.

앞으로 또 아프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다.

아빠노릇 참 어렵다.

Posted by leeban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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